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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형모 | 2008/12/23 18:07 | 트랙백 | 덧글(0)
[리포터's컷]마이크 놓고 자연인으로 4년, 황인용



황인용 씨와의 인터뷰는 중간 중간 음반을 갈아 끼우고, 오가는 손님들과 인사를 주고받느라 자주 끊어졌다. 음악과 함께 하는 요즘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황 씨는 “남들이 보기 좋다고 하니 나도 좋다”며 특유의 ‘큭큭큭’ 소리와 함께 활짝 웃었다. 


경기도 파주 헤이리예술인마을의 ‘카메라타’에 들어섰다. 거대한, 회색빛 공간은 클래식음악과 커피향으로 가득했다. ‘황인용 선생을 뵈러 왔다’고 하니 직원이 한 쪽 구석의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황인용(68)씨는 안경 너머로 책을 읽고 있었다.

마치 세월이 붙들어 매어진 것 같았다.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들어보이지도, 덜 들어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서울은 아직도 덥습니까?”

황 씨는 날씨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서울에서 불과 자동차로 30여 분 거리에 살면서도, 그는 마치 만 리쯤 떨어져 사는 사람처럼 말했다. 헤이리로 들어온 지 4년. ‘만 리’는 물리적 거리가 아닌 세상과의 거리감일 터였다. 마이크를 떠난 그는 이제 자연인이자 예술인이다.

- 고향이 파주시죠? 이른바 귀향을 하신 것 아닙니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군요, 흐흐. 고의성은 없지만.”

-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실컷 하면서 은퇴 이후의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황 선생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만.

“시각을 달리해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자신의 직업이 취미와 연결된다면 더 없이 좋은 일일 겁니다. 물론 그렇지 않더라도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원하는 것을 얻겠지만 그래도 역시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는 건 좋은 거죠. 저는 본래 하루 30분에서 1시간 정도는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있어야 견디는 인간이었어요. 음악을 듣든, 친구들과 담론을 벌이든, 술을 마시든. 자기 자신을 위해 시간을 쏟다보면 거기서 뭔가 세계가 생기게 됩니다. 제게는 음악과 오디오였지요. 소리가 좋아서 쫓아다니다보니 노후에 하나의 동반자, 인생의 동반자로 발전됐다고나 할까요.”

황 씨는 오디오 마니아로 유명하다. 고전음악감상실 카메라타의 진짜 주인은 그런 점에서 황 씨가 아닌 오디오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카메라타의 전면 벽은 거대한 스피커 두개로 채워져 있다. 1930년대 무성영화시대에 미국 극장에서 사용하던 웨스턴 일렉트릭사의 빈티지 제품이다.

- 오디오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신 겁니까?

“70년대까지만 해도 스피커 두 개 달린 전축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지독하게 가난했죠. 74년인가? 대한민국 아나운서상을 탔어요.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시상식을 했죠. 아내와 같이 가서 상금 20만원을 받았습니다. 집에 오다가 그 돈을 가지고 금성사에서 나온 전축(이라고 하기도 뭣하지만)을 샀지요. 한쪽은 스피커만 있고, 다른 한쪽은 스피커 밑에 튜너와 앰프가 달린 놈. 그게 제 개인 오디오의 시초입니다.”

80년대에 들어오면서 황 씨는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됐다. 프리랜서를 선언한 첫 달 수입이 200만원. 아나운서 한 달 월급이 50만원이 채 안 되었으니 무려 4배 이상을 번 것이다. 첫 수입에서 절반을 떼어 집에 가져다주고, 남은 100만원에 돈을 보태 세운상가로 달려갔다. 그 자리에서 탄노이 턴테이블과 쿼드 앰프를 샀다. 오디오 인생의 시작이었다.

- 아나운서 월급이 그렇게 짰습니까?

“말도 못하죠. TBC가 삼성계열이잖아요? 그런데 삼성그룹, 예를 들면 삼성종합상사같은 곳하고 비교할 수가 없었죠. 아나운서는 보너스도 없었어요. 중계방송을 죽어라고 해도 특근수당 400원인가 받았죠.”

사람들이 ‘황인용’ ‘황인용’하던 시절에도 그는 여전히 돈이 없었다. 70년대 후반 저명한 모 일간지 주필이 황 씨에게 연락을 취하려 했는데 도통 연락이 되지 않았다. 황 씨 집에 전화가 없다는 것이었다. 화가 난 주필이 동양방송 고위층에 전화를 걸어 “당신네 대표 아나운서가 아직 전화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레코드라는 걸 거의 사 보지 못했어요. 내가 40년생이니까 80년이면 마흔. 마흔 되도록 그랬어요. 아마 그 이후 행적을 보면, 30대 때의 빈궁함으로 맺힌 한풀이가 아닌가 싶어. 그래서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죠. 그렇다고 마음껏 가졌느냐 … 하면 그건 아니고. 지금 카메라타의 음향 시스템도 불완전해요. 소리 나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전원장치니 하는 것들이 오리지널이 아니거든. 그런 걸 다 갖추고 싶죠.”

- 돈도 많이 드셨죠?

“뭐 일부 처분하기도 하고, 돈 더 보태서 바꾸기도 하고 … 1억은 넘겠죠, 아마?”

80년대 라디오세대에게 황씨는 ‘영원한 영팝스’이다. 오후 8시, 척 맨지오니의 ‘Give it all you got’ 트럼펫 소리와 함께 나지막한 황씨의 오프닝 멘트가 깔리고, 곧 이어 첫 곡이 흘러나오면 너나할 것 없이 우리들은 워크맨의 녹음 버튼을 눌렀다. 덮어쓰고 지우고를 반복한 너덜너덜한 공테이프는 당시 10대들의 자랑스러운 훈장이었다.

- 영팝스를 듣던 세대들은 황선생을 팝전문가로 여기고 있었는데, 언제 클래식으로 ‘전향’을 하신 겁니까?

“방송에서 하도 팝을 듣다 보니까 반발심리가 생겼다랄까요, 하하하! 저는 사실 클래식에 대한 ‘펀더멘탈’이 매우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고전음악에 대한 본질적인 호기심이 아주 강했어요. 모르니까. ‘아, 이게 공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예술세계구나’하고 느꼈죠. 그렇다고 해서 팝을 싫어하거나 홀대하지 않습니다. 팝 중에도 예술차원에서 훌륭한 곡들이 부지기수죠. 다만 클래식은 팝과는 전혀 다른 음악언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마, 허영심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거예요. 클래식을 들으면 뭔가 … 하하하!”

황 씨는 스스로 지극히 가난했지만 음악에 대한 감수성은 타고난 것 같다고 했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움직이는, 그것도 크게 움직이는 사람이다.

초등학교 시절 여선생님의 풍금소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중학교 때 새로 부임한 음악선생이 “얘들아, 이게 성악이란다”며 직접 불러준 가곡 ‘희망의 나라로’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평생 모은 LP판은 1만4000여 장에 이른다. 이 중에는 ‘김경원 박사 컬렉션’ ‘홍석현 회장 컬렉션’ 등 기증받은 것들도 있다.

한때 방송가에서 그는 ‘황육백’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누군가가 “황인용은 한 달에 600만원을 번다”고 말하고 다닌 것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90년대 얘기일 겁니다. 그땐 정말 프로그램을 많이 했어요. 아침에는 강부자 씨와 ‘황인용 강부자입니다’ 2시간, 밤에는 ‘영팝스’ 2시간. TV도 했지 … CF에도 가끔 등장하지 … 실제로 어느 해인가는 전체 연예인 중 세금 낸 순위가 6등인 적도 있었죠. 하여간 그 당시는 동료 아나운서들한테 ‘야, 황인용이가 큰 부자되겠구나’하는 이미지를 주지 않으려야 주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큰 부자’가 되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동료들보다 많이 번 것은 사실이지만 ‘돈은 그렇게 버는 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매니저를 두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된다. 그저 많이 뛰고 적게 받았다. 박리다매였지만 실속이 별로 없었다.

- ‘황인용 강부자입니다’ 또한 간판 프로그램이었죠. 기억나는 에피소드 같은 것은 없으십니까?

“‘황인용’이란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게 그 프로그램 덕이었죠. ‘황인용 강부자입니다’는 서민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호텔에 가면 도어에서 일하시는 분, 음식점 가면 주방에서 일하시는 분, 이런 분들한테 절대적으로 인기가 있었죠. 그런데 이런 분들한테 인기 있으면 살기가 굉장히 편합니다, 하하하! 그리고 그 효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푸하하!”

황 씨는 1980년 신군부 정권의 언론통폐합이 실시되던 당시 TBC 동양방송 소속의 아나운서였다. 그 해 11월 30일 밤12시. 그는 동양방송 최후의 방송을 한 아나운서로 기억된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마지막으로 방송하며 울먹이던 그의 목소리는 당시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가슴을 축축하게 적셨다.

“남은 5분이 … 남은 5분이 너무 야속합니다. 10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5분이 10분이 될 수는 없습니까? 여러분의 가슴에 오래오래 동양방송의 기억을 소중히 묻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중략) 아, 이제 동양방송은 3분입니다. 끝으로 동양방송의 호출번호를 다시 한 번 알려드리겠습니다. 여기는 … 육백 삼십 … 구 킬로헬츠 … ”

황 씨는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밤 11시부터 12시까지 1시간 동안 진행했다. 본래 새벽 1시까지지만 이날은 12시를 기점으로 동양방송의 전파 송출을 중단해야했기 때문이었다.

“TV는 11시 30분쯤 끝났죠. 동양방송의 마지막 방송을 보기 위해 동료들과 PD들이 모두 스튜디오로 몰려왔습니다. 안에서는 나 혼자 방송을 하고, 유리창 밖에서는 수많은 직원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죠. 비장한 분위기였습니다.”

30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생생한 기억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은 그날을 얘기하면서도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은 상처를 깁고 치유하는 유일한 신의 치료제이다.

준비해 온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왔습니다. 지금 눈앞에 마이크가 놓여 있고, 전 국민이 황선생의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삶의 끝에서, 마지막 방송을 하신다면 뭐라 말씀하시겠습니까?

“인생은 뭐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지만 … 또 그렇다고 그렇게 쓴 것만도 아닙니다. 인생은 재미있는 하나의 드라마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살아볼 만 합니다 … 이 정도가 아닐까요?”

파주=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by 양형모 | 2008/08/30 10:36 | ★이너뷰(Reporter's Cut) | 트랙백 | 덧글(0)
[블랙&화이트] 한국바둑의 '도요타덴소배 굴욕사건'




믿고 싶지 않은 소식입니다. 지난 27일 일본기원에서 열린 제4회
도요타덴소배세계바둑왕좌전에 출전했던 한국기사들이 전원 패퇴하며, 단 한 명도 4강에 오르지 못하는 ‘참사’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이날 8강전에는 이세돌, 조한승, 목진석이 나섰지만 시에허, 구리, 박문요에게 연달아 패해 ‘대 중국전 퍼펙트 패’의 아픔을 안게 됐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아쉬움과 분노로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한국이 단 한 명도 8강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전원 탈락하는 악몽은 제6회 춘란배 8강전 이후 2년 만의 일입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중국은 온통 축제 분위기입니다. 중국은 이번 ‘쾌거’에 대해 ‘중국바둑 실력이 전체적으로 상승했다는 증거’라며 한국의 전멸사실을 크게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많은 선수들이 출전했지만 중국은 고작 5명이 출전해 거둔 성적’임을 강조하며 ‘중국이 도요타덴소배에서 진정한 승리를 거뒀다’고 환호성을 올리고 있습니다.

아쉽습니다. 그것도
세계바둑계의 라이벌 중국에게 완패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기만 합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요?

전문가들은 “중국이 한국기사들을 철저하게 연구한 것 같다”는 데에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타도한국’을 외치며 한국 강자들의 허와 실을 깊이 파헤쳐 왔고, 그 노력들이 슬슬 결실을 맺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프로기사들은 ‘한국기전의 지나친 속기화 경향’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는 대부분의 기전들이 1시간 이내의 속기전입니다. 이는 ‘빠른 승부’를 원하는 팬들의 입맛과 TV기전의 성행 탓이지요.

속기전이 나쁠 일이야 없지만 대부분의 기전이 속기전으로 치러지다 보니 프로기사들 역시 평소 속기훈련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속기는 치밀한 수읽기보다는 ‘감각’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따라서 프로기사들은 순간적인 판단력과 감각이 증강하는 반면 집요하게 읽고 버티는 수읽기의 ‘본능’이 퇴화하게 됩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기사들은 번번이 중국기사들에게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한 프로기사는 “한국기사들은 후반전에서 ‘감’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기사들은 정확히 둬서 승리를 가져갔다. 끝내기에 초점을 맞춰 준비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바둑의 강점이었던 ‘공동연구’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도 한국바둑의 약화에 ‘한 점’ 보탠 것으로 여겨집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연구회의 이름 아래 기사들이 모여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했다면, 2000년대 들어서면서 개인적 친분에 의한 소규모 연구 위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올림픽과 함께 상승기세를 한껏 탄 중국을 상대로 한국은 올해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것 같습니다.

통합예선에서 16장의 본선티켓 중 중국이 10장을 확보한 삼성화재배를 비롯해 ‘바둑올림픽’ 응씨배, ‘한중일 바둑삼국지’ 농심신라면배 등이 줄줄이 남아있습니다.

‘두뇌올림픽’이라는 세계마인드스포츠대회도 올해 처음으로 열립니다. 힘 빠진 한국바둑, 보약이라도 한 첩 달여 먹고 힘내야겠습니다.

양형모기자
ranbi@donga.com



by 양형모 | 2008/08/30 10:30 | ★바둑-19로의 마법 | 트랙백 | 덧글(0)
[촉촉한클래식]기타계의 '로열패밀리'-로스 로메로스




가을을 부르는 소리.

클래식기타는 바이올린과 함께 ‘인간의 슬픔’을 가장 잘 드러내는 악기로 꼽힌다. 물론 둘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바이올린이 슬픔을 가장 ‘처절하게’ 표현한다면, 기타는 가장 ‘애닯게’ 들려준다.

바이올린이 연인과의 이별이라면, 기타는 그 1년 후를 노래한다. 슬프다. 그것도 너무나도 인간적으로.

클래식기타계의 ‘로열 패밀리’ 로스로메로스가 창단 5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는다. 로스로메로스는 ‘기타4중주’라는 형식을 창조했다는 찬사를 듣는 최강의 기타 연주집단.

1세대 셀레도니오 로메로의 뒤를 이어 1990년부터는 2세대 페페와 셀린, 3세대 셀리노와 리토의 앙상블이 전설을 잇고 있다.

이번 무대에서는 스페인 작곡가 로드리고가 패밀리에 헌정한 ‘안달루자 협주곡’을 비롯해 기타의 영원한 고전 ‘아랑훼즈 협주곡’, 비발디의 ‘네 대의 기타를 위한 협주곡’ 등이 펄펄한 생선회처럼 오른다.

이들 패밀리에 바친 뉴욕타임즈의 극찬 한 토막.

“이들 중 한 명은 분명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이다. 단 하나 남은 문제는 과연 그들 중 누구를 꼽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자, 기타의 전설 로스로메로스이다. 과연 당신이라면 누구를 꼽고 싶은가?



로메로일가. 페페 로메로, 리토 로메로, 셀리노 로메로, 셀린 로메로(왼쪽부터).[사진제공=고양문화재단]

[일시] 9월5일 8시
[장소]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
[문의] 1577-7766
[티켓] 2만원∼7만원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by 양형모 | 2008/08/26 10:07 | ★음악-오선판타지 | 트랙백 | 덧글(0)
[촉촉한공연]디즈니라이브-미키와 함께하는 행복한 클래식동화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디즈니’의 힘. 이번 공연은 오리지널이기에 더욱 끌린다. 디즈니라이브 미녀와 야수(큰 사진) 미키와 친구들,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신데렐라에게 유리구두를 신겨주고 있는 왕자, 공주들의 왈츠(작은사진 위부터).[사진제공=프라이빗커브]




“과연 디즈니!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공연시간이 80분이나 돼 은근히 걱정했는데, 아이가 그러더군요. 엄마 벌써 끝난 거야?”

디즈니가 왔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아이들보다 엄마, 아빠들이 더 좋아하는 ‘무늬만 어린이를 위한’ 공연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 감성을 공깃돌처럼 ‘갖고 노는’ 디즈니의 오리지널 공연. 올 여름방학도 다 갔다. 방학 내내 변변한 수영장 한 번 데려가지 못한 무책임한 아빠들이여! 마침내 명예회복의 기회가 왔다.

‘디즈니라이브-미키와 함께 하는 행복한 클래식동화’는 제목 그대로 가족이 모두 빠짐없이 행복할 수 있는 공연이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 ‘신데렐라’ ‘미녀와 야수’로 이어지는 세 편의 고전동화와 디즈니의 간판스타들인 미키 마우스, 미니 마우스, 도널드 덕, 구피 등 ‘디즈니친구들’을 교묘하게 얽었다.

디즈니 오리지널 사운드, 어린이를 위한 공연장치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수준 높은 무대세트와 의상, 신나는 노래와 춤은 80분 내내 아이들의 궁둥이를 들썩이게 만든다. “마녀가 독이 든 사과를 건네주는 장면에서 아이들은 백설공주에게 ‘Don’t eat!’을 외치고, 부모들은 신데렐라에게 유리구두를 선물하는 장면에서 아이들이 따라 부르는 ‘비비디 보비디 부(Bibbidi-Bobbidi-Boo)’에 흥겨워할 것”이라던 기획사의 말 그대로이다.

국내 어린이영어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관심을 반영해 이번 공연은 영어버전과 한국어버전이 따로 있다. 공연 전에는 EBS 영어강사로 유명한 아이작 더스트 씨가 등장해 영어 대사와 노래를 어린이 관객들과 함께 배우는 시간도 있다. 이 코너는 디즈니 월드투어 중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마련됐다.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누어주기 위한 사회공헌 프로그램 ‘디즈니 월드와이드 아웃리치’의 일환으로 열리는 이 공연은 오는 31일까지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개최된다.
[문의] 563-0595
[티켓] 2만2000원∼5만5000원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by 양형모 | 2008/08/26 10:04 | ★음악-오선판타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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